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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극복실/괜찮아 : 아포리즘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by 덕펜하우어 2012. 3. 6.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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