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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추구실/좋은생각 : 강연 및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국진, 실패를 말하다

by 김핸디 2012. 2. 13.

[머니투데이 대담=유병률기획취재부장, 이현수 최우영기자 ]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
88만원 세대'에게 < 8 > 개그맨 김국진]

구강구조가 특이한 남자, 혀 짧은 소리로 '맹맹거리는' 남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린 남자, 그러나 가왕(歌王) 조용필도 제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50년간 가장 사랑 받는 연예인' 1위로 뽑혔던 남자, 개그맨 김국진(46).




김국진은 "시골길을 가도 잘 닦여진 길, 다녔던 길 보다 험한 길, 몰랐던 길을 찾아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김국진은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 수없이 둘러서 여기까지 왔다. "인생에선 말이죠. 안전한 길만 찾다 보면 갈 데가 없어요. 안전만 추구하는 게 가장 불안전한 삶이에요.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는, 그러다 서서히 죽어가는 인생말이죠." /사진=임성균기자 tjdrbs23@


'밤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짜장면 시키신 분' '오 마이 갓' 등 그의 입에서 나오던 혀 짧은 소리가 아직도 시청자들 귀 끝에 맹맹거리는 대박 유행어의 주인공. 하지만 골프, 사업, 그리고 결혼 등에서 실패를 연속하며 5년간 TV에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남자. 그러다 4년 전 재기해 후배들 틈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남자, 김국진을 만났다.

화려했던 성공담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처절했던 실패론(失敗論)을 듣기 위해서 였다. 실패에 대한 김국진의 철학이 힘든 사람들에겐 유명인사의 그 어떤 성공담보다 더 강력한 위로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특히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들에겐 말이다.

"성공은 실패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

질풍노도의 신인시절을 거치고 잠시 미국을 경험한 김국진은 귀국 후 토크쇼를 맡았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본다. 하지만 '테마게임'을 시작으로 진짜 전성기(1997~2001년)를 맞는데 이때 그의 인기는 지금 유재석의 딱 10배였다. '국찐이빵'은 하루 60만개가 팔리면서 쓰러져가던 기업도 살려냈다. 그때 돈으로 일주일에 1억원씩 벌던 시절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후 결혼과 이혼, 이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 방송중단, 15번 연속 골프 프로테스트 탈락, 골프의류사업 실패…. 언제 끝날지 모를 내리막이었다. 그러다 '라디오스타'로 재기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바닥을 찍고 다시 움직이려는 딱 그 위치'에 김국진은 서있다.

대한민국 안방을 초토화시켰던 최고스타가 돼보기도 했고, 바닥까지 떨어져보기도 했던 김국진. 성공과 실패의 엄청난 진폭을 경험해온 김국진. 실패와 성공은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인과관계에요. 실패를 하니깐 성공도 할 수 있는 거에요. 왜냐고요? 최선을 다해 움직여서 얻어진 실패는 자신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그래서 실패를 해도 어떻게 실패했냐가 중요하죠. '뭐 해볼까? 어, 안됐네!' 이런 실패는 백날 해도 소용없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최선을 다해서 실패해야 하는 거에요. 성공은 실패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이에요."

최선을 다해 움직여서 얻어진 실패라! 귀국후 토크쇼를 맡았을 때 그는 미국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다 쏟아 부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으니 엄청나게 성공할 줄 알았죠. 그런데 50분짜리 프로그램을 5분짜리 '개콘'처럼 준비했더라고요. 이런 실패가 아니었다면 전성기? 없었을 거에요."

날개 없이 추락할 당시 김국진은 '미친듯이' 골프를 쳤다. "철저히 깨져보고 싶더라고요. 오죽하면 열다섯번씩 (골프 프로테스트에) 도전했겠습니까. 깨지고 깨져보니깐 어떤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실패 자체로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뭔가 얻는 게 있을 거라고 말이죠."




"부딪혀서 멍이라도 들어봐라"


기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개그맨, MC로 승승장구하던 어느날 밤, TV화면에 어색하고 어눌하고 침울한 얼굴의 농촌총각으로 김국진이 등장한 장면을. 농촌총각은 연변처녀의 사랑을 외면하고 허영이 가득한 '꽃뱀'에게 빠져 전 재산을 날렸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당시 그 드라마에는 '개그맨 김국진'은 없었다. 불안하고 쓸쓸한, 한 어리석은 농촌총각만 있었다. 시청자를 자지러지게 하던 개그본능은 철저히 숨기고 어떻게 그렇게 어리어리한 농촌총각으로 빙의가 될 수 있는지, 기자는 '짠'했다.

"전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재능도 없고 자신도 없었죠. 대본 리딩을 하면 제가 생각해도 발음이 안 되는 거에요. 드라마에서 어디 게임이나 되는 얼굴인가요. 표정이 다양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제가 드라마를 10편 정도 했습니다. 드라마를 하면서야 '내가 드라마를 할 수 없다'고 딱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는 걸 알았죠. 개그는 '웃음'이 아니고 '인생'인데 말이죠. 재미있어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슬퍼서, 내 이야기 같아서 나오는 웃음이 진짜인데 말이죠."

그래서 김국진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진짜 내 길을 찾을 수가 있어요. '한번 해보고는 싶다'는 생각만 든다면 일단 부딪혀보라는 거죠. 부딪혀서 멍이라도 들어보라는 거죠. 몸에 든 멍이 사라질 즈음엔 더 큰 게 가슴에 새겨질 거라는 거죠. 그게 진짜 자기 것이죠."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또 한번 '짠'했다. 아직도 많은 멍자국이 그에게 남아있을 텐데, 후배들에게 '치이면서' 새로 멍들기도 할 텐데. 하지만 김국진이 멍을 다 털어낼 즈음엔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올라가던 그 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잃고 길바닥에 누우면 경찰이라도 깨워준다"

김국진을 만나기 전 그를 잘 안다는 연예부 기자들로부터 먼저 김국진의 뒤를 캤다. 김국진에게는 '할머니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다. 길가다 물건 팔고 있는 할머니, 고물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건을 사주든지, 수레라도 밀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왠지 (이런 사회에 대해) 화가 좀 나더라고요. 저라도 잘해드리고 싶고, 그렇죠." 그래서인지 김국진의 실패론에는 사람 냄새가 났다.

"제가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롤러코스터를 타고 급강하해도 너무 걱정말라고, 안전바가 있다고 말이죠. 젊은 친구들이 두렵고 불안해서 뭘 못하잖아요. 이거 해보다 망하면 인생 끝일 것 같고, 그래서 겁나서 못하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실패해도 부모형제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요. 얼굴도 모르고 낯설어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하다못해 길바닥에 쓰러져서 잠들어보세요. 경찰이라도 깨워주고 가요. 다 포기하고 처박혀있고 싶어도, 그거 마음대로 못해요. 이런 게 다 안전바에요."

그래서 김국진은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한번 부딪혀보라"고 말했다. "두려워서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실패도 않겠지만, 죽을 때까지 성공도 못하는 거에요. 우리 사회는 안전지대가 별로 없거든요. 안전, 안전, 하다보면 진짜 갈 데가 없어져요. 안전만 추구하는 게 더 불안전한 삶이 되는 거에요. 왜 많이 배우신 교수님, 또 오피니언 리더라는 분들, 이런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 걱정 많이 하잖아요. 그냥 겉치레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저도 걱정 많이 하고요. 걱정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부딪혀보세요."


"지나가는 닭 한 마리도 그냥 보지 마라"


기자는 김국진에게 청년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패론을 주문해봤다. 부딪혀 실패해서 배우더라도 요령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대뜸 닭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한번은 무뚝뚝한 사람에게 '꿈꾸는 닭'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스개 소리죠. '내가 닭도 꿈을 꾸는지 실험을 했다. 닭에게 실험을 해야 한다고, 자라고 해도 닭이 안 자더라. 자꾸 자라고 다그치니깐 닭이 화가 나서 스스로 털을 뽑고 양념을 몸에 바르더니 열 받아 못살겠다면서 양념통닭집으로 걸어가더라' 뭐 이런 개그를 했는데 그 무뚝뚝한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닭이 어떻게 자기 털을 뽑느냐'고요. 말문이 딱 막혔죠. 유머가 안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 무심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닭은 닭일 뿐이라 생각한다는 거죠. 제 얘기는 어느 날 지나가는 닭을 봐도 그냥 보지 말라는 거에요. 절 보세요. 개그의 소재를 찾잖아요. 다 연결돼 있어요. 이 길과 저 길이 전혀 상관없는 것 같죠? 사실은 다 연결돼 있어요. 뭐든지 두드려보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처음엔 아닌 것 같아도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결국은 길을 찾는 거에요."

김국진이 청년들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그 속에서 아이디어를 구하고, 길을 찾는 것.

김국진은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회상할 때보다, 완전 나가떨어졌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 눈이 더 반짝거렸다. 김국진을 다시 스타의 대열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 그의 밑천도 숱한 실패의 시간에서 나온 듯했다. 김국진의 말처럼, 만난 적도 없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내편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실패해도 내 걱정을 해줄 많은 사람들, 그 속에 김국진도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인생 한번 두드려볼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