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주 좋은 영화를 한 편 보고왔습니디. 이미 평단과 관객의 끊임없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작품. 바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입니다.
<우리들>을 보노라면 엄청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거나 상황이 자극적인것도 아닌데 선이와 지아의 감정선을 따라가노라면 내 치부와 어린시절을 들킨 기분이 들어 한 순간도 눈을 뗄수가 없죠.
주인공 선이는 왕따입니다. 나쁜 보라년...아니 보라라는 아이가 주도한 왕따의 희생자이죠. 사실 선이는 누구보다 속이 깊은 아이입니다. 엄마가 피곤할까봐 동생을 챙기며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고, 친구들의 마음도 누구보다 잘 헤아립니다. 그러나 선이네 반 친구들, 특히 보라년... 아니 보라 무리에게는 눈엣 가시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던 선에게 지아라는 친구가 다가옵니다. 새롭게 4학년 3반이 된 지아는 선이의 배려심과 따뜻한 마음을 금세 알아보고 둘은 세상 둘도없는 단짝이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섬세하고 여려서, 의도치 않은 곳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엄마와 다정한 선의 모습을 지켜보는 지아의 복잡한 마음이었죠. 지아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습니다. 지아는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엄마가 늘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그런 지아에게 엄마의 품에 안겨 대화를 나누는 선의 모습은 묘한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죠.
'우리들'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자 둘의 우정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려갑니다. 지아가 선이 왕따라는 사실을 알고 보라 무리에 서서 선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사실 지아가 이러는데는 이전 학교에서 당한 왕따경험의 트라우마가 큽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피해자가 가해의 동참하며 자신의 안전함을 확보하려는 경우죠. 그러나 겨우 11살인 선에게 지아의 변해버린 태도는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지아야 내가 뭐 잘못한거 있어?'
'아니.. 없는데?'
11살 두 소녀의 감정들은 그렇게 어그러져 갑니다. 그리고 보라 무리의 이간질(?)로 인해 그들은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집니다.
물론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위대한 점이자 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결국 선이 내딛는 한걸음의 용기 때문일것입니다. 여차저차해서 보라 무리에게도 다시 왕따를 당하기 시작하는 지아. 그런 지아에게 선이 용기를 내는 것이죠.
'지아 선 안 밟았어. 내가 봤어.'
그 순간 지아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억울하고 답답하고 누구도 내 편이 아닌 상황에서, 자기와 이미 멀어질대로 멀어진 선이 던진 그 한마디가 어쩌면 지아의 무너진 세상을 구원하는 전부는 아니었을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멈칫했어야 했습니다. 소심하고 조용하던 성격의 저학년 시절에는 선의 모습이 저였고, 활발해지고 난 뒤에는 보라의 모습이 저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선, 지아, 보라. 각자 다른 세 사람의 권력관계와 감정이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 속 그돌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의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상처받고, 또 배신당해도 한 발짝 내딛어 견고하게만 보였던 그 틀을 깰 수 있는 '용기'. 주인공 선은 누구보다도 약하고 관계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있는 인물이지만, 선이 보여준 그 작은 용기는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성인이 된 우리들은 이 아이들이 보여준 세계에서 얼마만큼 자라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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