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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실

대선 후 멘탈붕괴 극복기

by 김핸디 2012. 12. 21.



0. 멘탈붕괴. 그것이, 실제, 내게로 다가왔다.




1. 2012년 12월 19일. 높은 투표율에 고무된 나는 친구와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5년 동안 이를갈며 바래왔던 '정권교체'의 순간을 뭇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우리는 희망차게 카운트를 외쳤고,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2. 이후 20일, 그리고 21일까지 나는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여태까지 믿어왔던 가치와 신념, 즉, '진실은 이기고 정의는 승리한다'와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 가 '아니' 라고 부정당하는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분노보다는 망각을 택했고, 공존보다는 이익을 선택했다.




3. 멘붕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책이라고 내놓은것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제 수용하고 포용하자' 라든가, '대통합을 이루자' 라든가. 내가 듣기에는 다 헛소리였다. 대통령을 부인하거나 선거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박근혜라는 인물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4. 더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믿어왔던 가치가 '아니' 라고 다수에 의해 부정당했다고 해서, 그게 정말 틀린것은 아니었다는 생각. 나는 지는 선택을 했지만, 그것이 결코 '틀려서' 는 아니라는 생각. 내가 읽어왔던 수많은 책이 말했던 '정의' 와 '희망' 그리고 '삶' 과 '공존' 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 그것이 지지받지 못하는 가치라고 해서, 사람들이 '이익' 과 '권위' 를 더 높이 친다고 해서 정말로 그것이 낮은 가치를 지닌것은 아니라는 생각.




5.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높은 투표율과 과반수의 득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통령에게 '도덕성' 을 기대할 것이고, 사람의 목숨은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할 것이며, 정의를 신봉하고,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한 번을 부정 당하고, 두 번을 부정 당하고, 세 번을 부정 당할지라도,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켜갈 것이다.




6. 이런 마음가짐이 어쩌면 '철 들지 않음' 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것을 주워서 여전히 소중하다고 쓰다듬고 있는 바보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철 들지 않음' 이라면, 기꺼이 '철 들지 않음' 을 선택할 것이고, '바보' 라고 손가락질 당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바보' 의 길을 갈 것이다. 




7. 2012년 12월 19일.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그리고 그 가치들을 실현시켜 줄 대통령 후보의 손을 잡았다. 졌고, 그래서 조롱 당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백번을 다시 돌아간다해도, 천번을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여전히 '지는'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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